식단을 계획해 본 적은 많습니다.
일주일치 메뉴를 적어보고,
장보기 목록도 함께 정리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번 주는
조금 덜 흔들릴 것 같고,
집밥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식단표는 냉장고 옆에 그대로 남아 있고,
식사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 일이 반복되면
계획을 잘못 세운 것 같고,
의지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식단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의지보다 식단이 놓인 구조에 있습니다.

이유 ① 식단이 ‘계획’으로만 존재할 때
많은 식단표는 계획에서 멈춥니다.
무엇을 먹을지는 적혀 있지만,
언제, 어떤 상태에서 먹을지는 빠져 있습니다.
하루의 컨디션,
퇴근 시간,
집에 들어오는 순간의 피로도는
식단표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식단은
현실과 부딪히는 순간 쉽게 밀립니다.
지켜지지 않는 식단은
잘못된 계획이 아니라
현실과 연결되지 않은 계획입니다.
이유 ② 조리 난이도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식단을 적을 때는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요리하는 시간은
대부분 가장 피곤한 순간입니다.
식단표에 적힌 메뉴가
그날의 체력과 맞지 않으면
계획은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때 식단은
도움이 아니라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식단이 있는 날일수록
오히려 계획을 피하게 됩니다.
이유 ③ 식단이 ‘대체 경로’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식단이 실패하는 집의 공통점 중 하나는
식단이 너무 정확하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이 메뉴여야 하고,
이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립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한 가지 변수만 생겨도
식단 전체가 무너집니다.
대체할 수 없는 식단은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식단이 달라지기 시작한 지점
식단을 다시 짜기 시작했을 때
메뉴를 늘리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식단의 역할을 바꿨습니다.
“무엇을 먹을지”가 아니라
“무엇으로 연결할지”를 먼저 정리했습니다.
이 메뉴가 부담되면
어떤 메뉴로 바꿀 수 있는지,
조리를 생략하면
어디까지 단순화할 수 있는지를
미리 생각해 두었습니다.
식단은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라
선택지를 줄여주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지켜지는 식단의 특징
- 메뉴보다 재료 중심입니다
- 완벽함보다 반복을 우선합니다
- 대체 가능한 경로가 있습니다
- 피곤한 날을 전제로 설계됩니다
이런 식단은
모든 날 지켜지지는 않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식단은 계획이 아니라 ‘완충 장치’입니다
식단의 역할은
매 끼니를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이 어려운 순간에
고민의 범위를 줄여주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식단은
잘 짜는 것보다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Kind Pantry의 정리
식단이 지켜지지 않는 집은
계획이 부족한 집이 아닙니다.
다만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식단은 목표가 아니라 도구입니다.
생활을 돕지 못하는 식단은
언젠가 외면받게 됩니다.
Kind Pantry는 식단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식사의 구조를 기록합니다.
친절한 창고, Kind Pantry입니다.